장 건강 챙긴다는 핑계로 줄 서 있다가 약관까지 읽어버린 밤 작성자 정보 올인킬러작성 작성일 26/06/27 15:05 컨텐츠 정보 1 조회 목록 본문 마감하고 가게 불 끄고 나니까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, 집 가는 길에 새로 생긴 발효음료 가게에 들렀어요. 요즘 장 건강이 어쩌고 하길래 나도 한번 챙겨볼까 싶었거든요. 사실 핑계죠. 그냥 따뜻한 거 한 잔 들고 멍 때리고 싶었던 거예요.근데 줄이 생각보다 길더라고요. 밤 열한 시 가까운 시간인데도 앞에 대여섯 명이 서 있었어요. 다들 비슷한 얼굴이었어요. 하루를 어떻게든 끝낸 사람들 표정. 그 줄에 서서 할 게 없으니까 휴대폰을 켰는데, 마침 그 가게 멤버십 가입하면 한 잔 할인해준다는 안내가 떠 있었어요.평소 같으면 그냥 '동의' 누르고 넘어갔을 텐데, 그날따라 시간이 남아서 약관이라는 걸 처음으로 끝까지 읽어봤어요. 진짜로요. 줄이 줄어드는 동안 천천히.읽다 보니까 좀 황당했어요. 내가 마시는 음료 한 잔 할인받자고, 마케팅 정보 수신부터 위치 정보 활용, 제3자 제공 항목까지 동의하게 돼 있더라고요. 물론 거부할 수 있는 항목도 있었지만, 기본값이 다 켜져 있는 식이라 그냥 누르면 전부 동의가 되는 구조였어요. 아마 저처럼 줄 서서 빨리 처리하려는 사람은 백이면 백 그냥 다 동의하고 넘어갈 거예요.그게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.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런 동의 받아두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. 다만 내가 신기했던 건, 그동안 수백 번은 눌렀을 그 '동의' 버튼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한 번도 안 봤다는 사실이었어요.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루에 동의하는 약관이 몇 개나 될까요. 앱 깔 때, 와이파이 붙을 때, 포인트 적립할 때. 그때마다 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. 저도 그날 밤이 아니었으면 평생 안 읽었을 거예요.음료는 솔직히 그냥 그랬어요. 새콤하긴 한데 장이 건강해지는 느낌까진 모르겠고. 근데 그 줄에 서서 약관 읽던 십 분이 묘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요. 평소엔 그냥 흘려보내던 걸 한 번 멈춰서 들여다본 시간이라 그런가 봐요.혹시 여러분은 약관 끝까지 읽어본 적 있으세요? 저는 그날 이후로 적어도 마케팅 수신 동의 항목 정도는 한 번씩 보게 됐어요. 별거 아닌데 묘하게 찜찜한 게 줄어들더라고요. 다들 그냥 누르고 사는 건지, 아니면 의외로 꼼꼼히 보는 분들이 많은지 궁금하네요.그리고 혹시 장 건강 진짜 챙기려고 그런 음료 드시는 분 계시면, 효과 좀 봤는지도 알려주세요. 저는 한 잔 마셔놓고 핑계만 거창했지 그냥 야식 대용이었던 것 같아서요. 어쩌면 그 줄에 서 있던 사람들도 다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싶어요. 0 추천
마감하고 가게 불 끄고 나니까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, 집 가는 길에 새로 생긴 발효음료 가게에 들렀어요. 요즘 장 건강이 어쩌고 하길래 나도 한번 챙겨볼까 싶었거든요. 사실 핑계죠. 그냥 따뜻한 거 한 잔 들고 멍 때리고 싶었던 거예요.근데 줄이 생각보다 길더라고요. 밤 열한 시 가까운 시간인데도 앞에 대여섯 명이 서 있었어요. 다들 비슷한 얼굴이었어요. 하루를 어떻게든 끝낸 사람들 표정. 그 줄에 서서 할 게 없으니까 휴대폰을 켰는데, 마침 그 가게 멤버십 가입하면 한 잔 할인해준다는 안내가 떠 있었어요.평소 같으면 그냥 '동의' 누르고 넘어갔을 텐데, 그날따라 시간이 남아서 약관이라는 걸 처음으로 끝까지 읽어봤어요. 진짜로요. 줄이 줄어드는 동안 천천히.읽다 보니까 좀 황당했어요. 내가 마시는 음료 한 잔 할인받자고, 마케팅 정보 수신부터 위치 정보 활용, 제3자 제공 항목까지 동의하게 돼 있더라고요. 물론 거부할 수 있는 항목도 있었지만, 기본값이 다 켜져 있는 식이라 그냥 누르면 전부 동의가 되는 구조였어요. 아마 저처럼 줄 서서 빨리 처리하려는 사람은 백이면 백 그냥 다 동의하고 넘어갈 거예요.그게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.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런 동의 받아두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. 다만 내가 신기했던 건, 그동안 수백 번은 눌렀을 그 '동의' 버튼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한 번도 안 봤다는 사실이었어요.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루에 동의하는 약관이 몇 개나 될까요. 앱 깔 때, 와이파이 붙을 때, 포인트 적립할 때. 그때마다 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. 저도 그날 밤이 아니었으면 평생 안 읽었을 거예요.음료는 솔직히 그냥 그랬어요. 새콤하긴 한데 장이 건강해지는 느낌까진 모르겠고. 근데 그 줄에 서서 약관 읽던 십 분이 묘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요. 평소엔 그냥 흘려보내던 걸 한 번 멈춰서 들여다본 시간이라 그런가 봐요.혹시 여러분은 약관 끝까지 읽어본 적 있으세요? 저는 그날 이후로 적어도 마케팅 수신 동의 항목 정도는 한 번씩 보게 됐어요. 별거 아닌데 묘하게 찜찜한 게 줄어들더라고요. 다들 그냥 누르고 사는 건지, 아니면 의외로 꼼꼼히 보는 분들이 많은지 궁금하네요.그리고 혹시 장 건강 진짜 챙기려고 그런 음료 드시는 분 계시면, 효과 좀 봤는지도 알려주세요. 저는 한 잔 마셔놓고 핑계만 거창했지 그냥 야식 대용이었던 것 같아서요. 어쩌면 그 줄에 서 있던 사람들도 다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싶어요.